아르카이크 시대
아르카이크 시대는 그리스의 미술사 중 미술이 융성하여 정착하였던 시기를 일컫는다. 기원전 10세기부터 9세기에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즉 폴리스가 성행하며 이후 시대에는 이를 기반으로 사회 문화 전반이 뚜렷한 발전세를 보였다. 마침내 지중해 도처에는 그리스의 식민도시 건설이 성행하며 아르카이크 시대가 태동한다. 아르카이크 시대는 기원전 7세기 중반부터 기원전 5세기 초까지 성행한 시대이며 시기상으로는 이전에 다루었던 기하학 시대 이후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의 이곳저곳에서 대리석을 재료로 삼은 인물상과 거상 등이 만들어졌다.
아르카이크란, 처음 혹은 '오랜'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인 또한 고전기 이전의 미술을 아르카이크라 칭했기에 현대에 와서도 이 시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스 고전기가 도래하기 전인 융성한 발전기가 미술사상의 아르카이크기이며, 이 무렵의 그리스는 그 당시 문화가 크게 번성했던 고대 이집트나 먼 동방과 접촉하여 조각 기술을 배움으로 대리석을 소재 삼고 영감을 받은 조각을 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출토품은 델로스섬에서 발굴한 니칸드라 헌납상과 사모스섬에 세워져 신전이 모시는 신인 헤라를 조각한 여신상 등이 있다. 이 중 기원전 7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니칸드라 헌납상은 현존하는 조각상 중 가장 오래된 아르카이크기의 조각품이다. 조각상의 직선적이고 편평한 형태는 그리스 초기 목상인 크소아논의 모습이 남아있다. 니칸드라 헌납상과 헤라상보다 조금 뒤의 시기인 기원전 6세기에는 그리스 각지에 오늘날 그리스어로 ‘젊은이’을 뜻하는 청년 형상의 쿠로스 상과 아름다운 의복을 걸친 여인상인 코레 상이 제작되었다. 옷을 걸치지 않은 청년의 모습 조각상과 다양한 형태와 양식을 보여주는 여인상은 아르카이크기의 가장 중요한 조각상들로 알려져 있다. 위에 소개한 입상 외의 발굴품은 델포이에서 출토된 낙소스 섬의 스핑크스, 델로스 섬에서 발굴된 델로스의 니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신전으로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전의 유서 깊은 박공 조각 등이 있다. 언급한 조각들은 그리스 미술 초기의 경직된 선과 성숙하지 못한 조각 기술의 흔적이 남은 동시에 강한 생동감과 조각가의 대담한 표현이 곁들여지며 다른 시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인 미감을 엿볼 수 있다.
중기 아르카이크의 조각상들은 그리스가 정복한 주변 국가의 영향이 본토에 닿으며 생긴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이오니아 미술 양식의 특징인 석재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표현이나 아몬드 모양으로 조각된 눈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아르카이크 스마일의 입매 등이 나타나 많은 점에서 이전보다 고정된 양식으로 변모했다. 결과 법칙을 따르는 이들 미술 양식은 아르카이크 시대 중기 후반 무렵인 기원전 550년∼기원전 525년에 본토에 정착된 양식의 수만큼 새로운 양식들이 생겼다. 대표적인 아르카이크 조각상으로는 아크로폴리스의 모스코포로스(양을 짊어진 청년)이다. 모스코포로스 상에서도 발견되는 아르카이크 스마일은 이 시대 조각 작품들에서 일관적으로 발견되는데 고대 그리스 미술가들은 조각상에 인간적인 표정을 담기 위해 지속해서 시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후기 아르카이크에는 인체와 근육에 관한 묘사가 한층 정밀해진다. 이로써 그리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아르카이크의 조각상들은 경직된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한층 자연스러운 형태를 조각해 낼 수 있게 된다. 기술의 정밀함 또한 발전하여 이전보다 정밀하고 생동감 있는 인간 육체 본연의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일전 소개한 아르카이크기의 남성 입상 조각의 대표 주자인 쿠로스 상 역시 기술 발전의 최후 단계에 다다랐다.
엄격 양식 시대
그리스가 페르시아로부터 얻어낸 전쟁의 승리에서 비롯되어 고전 전기의 빛나는 달성에 도달하는 과도기인 약 30년간의 기간을 현대에 이르러 엄격 양식의 시대라고 칭한다. 한편으로는 아르카이크 시대가 끝나는 시점이 고전 전기 미술의 시작이라고 보는 입장 또한 존재한다. 이 시기를 인정하지 않는 주장 또한 다수 존재하므로 엄격 양식 시대가 그리스 미술사에 기록될 절대적인 시기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쿠로스 상에서 시작된 남성 나체 입상의 기본형은 크리티오스의 소년상을 거치며 기존의 양식을 완전히 뒤집어엎었다. 이 시기 이후로 조각은 보다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동세를 띄며 이상적인 미의 형태로 변화되어 간다. 한 시기를 장식했던 아르카이크의 스마일 또한 이 시기의 조각상에서는 사라지며 실존적이고 엄격한 표정으로 변한다. 아페아 신전의 박공 조각과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박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군상 또한 풍부하고 다양한 자세를 빚어내며 이전 시기보다 자연스러운 형태에 근접한다. 각각의 조각상에서 격동하는 시대의 이데아와 인체 본연의 생기가 조각되어 있다. 델포이의 청동 마부상과 아르테미시온 청동상은 엄격 양식 시대라 일컬어지는 미술적 과도기 입상 조각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불린다.
고전 전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얻어낸 승리는 그리스 민족에게 긍지와 자신감을 부여하며 정치와 경제, 예술과 철학, 문학 등의 전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아테네는 철저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전성기를 맞이하여 단번에 그리스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을 기반으로 고전 전기의 조각은 이상적이고 조화와 균형을 갖춘 미의식을 탄생시켰다. 조각된 상은 단순 명료한 형식으로 정리되었으며 돌조각 아래로 감정을 초월한 탁월한 정신성이 새겨져 있다.
그리스 미술사의 고전기 초기를 대표하는 미학론은 정지한 순간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인체의 역동성을 사진처럼 담아냈다. 미론이 조각한 원반 던지는 사람, 마르시아스 상은 육체 정과 동이 최고조에 달한 긴장의 순간을 석재에 새겨 넣은 것이다. 표현된 육신은 운동 중인 격렬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그 표정이 정적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미론, 페이디아스와 함께 고전 전기를 대표하는 조각가인 폴리클레이토스는, 남성 육신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별로 수학적으로 산출해 그것을 카논이라 불리는 책에 기록했다. 창을 멘 청년(도리포로스)이나 디아데마를 매는 청년(디아두메노스) 등의 조각상은, 카논에 기록된 비례를 기초로 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 이르러 저서도 청동의 원작도 없어졌기에 우리는 로마 시대에 조각된 모작을 통해서만 원작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고전 후기
기원전 432년에 시작되어 30년 동안 계속된 지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경계로 삼는 고전 후기는 폴리스 간의 대립과 투쟁으로 빼곡했던 시기이다. 국가의 이상이 약해지며 고전 전기와 궤를 달리하는 사상적인 변모도 일어난다. 완벽함을 추구하던 사회에는 회의론과 개인주의적인 풍조가 일기 시작했다. 미술 면에서도 지엄하고 절대적인 신들의 모습 대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술의 신 디오니소스, 사랑의 신 에로스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신들이 미술의 대상이 되었다.
고전 전기에는 신들의 고귀함과 웅장함을 추앙한 것에 비해 고전 후기에는 인간적임과 찰나를 표현했다. 이는 '양식의 숭고함-고귀한 신들'에서 '일반적 양식·아름다움을 묘사' 하는 과정으로 이양되는 시기이도 하였다. 고전 후기의 우미(아름다운) 양식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세 조각가로는 기품 있는 감성을 의인화하였던 프락시텔레스, 깊고 내면적인 인간의 감정을 조각하며 대조적인 길을 걷던 스코파스, 남성 미감의 새로운 이상을 규정하며 알렉산드로스의 궁정 조각가로 활약한 리시포스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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