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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사 (5)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

by AllJung 2024. 10. 17.

헬레니즘 시대

 



조각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기원전 336∼기원전 323)의 시기에 동방으로 향하는 원정에 의하여 이집트를 비롯한 오리엔트 문화와 접촉하였다. 이 시기가 있고 난 뒤 그리스의 문화는 이전에 없었던 동방적 요소와 섞이고 융합하며 이 시기만의 뚜렷한 변화를 이룬다. 현대에는 이 시기의 그리스 미술사를 헬레니즘 시대라 부른다.
이 시대는 폴리스의 세력이 잇따라 붕괴하는 사건이 일어나며 강대하고 지엄한 힘을 한 사람이 지니게 되는 군주제로 바뀐다. 정치적인 지각 변화는 종교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쳐 인간을 지배하던 올림포스의 주신들로부터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쾌락의 추구로 사람들의 관심사가 옮겨졌다. 위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기본으로 발생한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의 미술은 역사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전 시대를 뛰어넘는 발전기를 이룩한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페르가몬 등으로 새롭게 발생한 미술의 중심은 본토를 떠나 넓게 퍼져나갔다. 다양한 민족과 이들이 지닌 문화와의 접촉은 물론 신 중심으로 흘러갔던 미술적, 사회적인 양상을 현실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얻은 소재는 지배 계층만 아니라 절대다수를 이루던 서민 일상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 넓혀지고 스며들었다. 절제와 엄격을 대표하는 고전적인 감정은 격정과 흥분에 의해 덮이고 헬레니즘은 일상 전반을 아우르며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그 유명한 라오콘을 비롯하여 페르가몬 제단(제우스의 대제단)에 아로새겨진 영웅의 부조는 인간의 비통과 격정이라는 감정을 차가운 돌 위에 새겼다. 이를 바탕으로 사실적인 감각과 고도로 발전된 석조 조각 기법은 권투사(拳鬪士)⟫, ⟪거위를 안은 아이⟫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 세속적인 제재를 표현한 작품 등을 배출했다. 또한 그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아프로디테)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조각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상이 제작된 것도 헬레니즘 시대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도드라진 인간적이고 격정적인 미술 특징은 이후 로마에 계승되어 새로운 전개를 펼치며 발전해 나갔다.

헬레니즘 양식
이전에 기술한 그리스 신전의 건축 양식사에서 언급하였듯 이전에 발생한 양식의 일종인 아르카이크 양식은 뒤이은 시기인 헬레니즘 양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널리 보급되어 간소하되 웅장함을 강조하는 도리아 양식과 에게해 근방과 서아시아 연안을 아우르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우미(아름다움)함을 강조하며 법칙적이고 아담한 이오니아 양식이 바로 그 예시이다. 두 가지의 양식은 헬레니즘 이전 기인 아르카이크 시기의 조각에도 특별하고 깊은 의미를 가진다.
아르고스, 시키온을 포함한 펠로폰네소스 도처에서 도리아 양식은 융성하게 발전하였다. 특히 남성의 나체상에서 도리아 양식 특유의 특징들이 발전했다고 전해진다. 아르고스의 폴리메데스의 두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의 상 조각은 도리아 양식의 예시로 다루어진다. 이 조각상에서는 남성의 근육을 무게 있게 다루며 엄격하고 절제된 도리스 양식의 절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장식적이고 묘사적인 특징이 주가 되는 이오니아 양식은 아름다운 의상과 장신구를 걸친 여인상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다. 앞서 기술한 아르카이크의 미소를 띠고 있는 입매는 한층 명료해졌으며 석재로 표현하였으나 투명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얇은 옷감의 표현과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육체가 보기 좋게 어우러지며 이오니아 양식 특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아크로폴리스에 배치되어 있는 대부분의 코레 조각상은 이오니아 양식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또한 아티카 양식은 기원전 550년쯤부터 아테네를 중심으로 아티카 지방에 개화한 양식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송아지를 둘러멘 청년(모스코포로스)나 파르테논 신전(헤카톰페돈)의 박공판에 새겨진 군상(群像) 등이 아티카 양식 초기의 좋은 예이다.

쿠로스과 코레
헬레니즘 미술의 기저에는 아르카이크 기의 입상의 기본인 쿠로스(kouros=청년이란 뜻, 복수는 쿠로이로 표기)상과 코레(kore=소녀라는 뜻, 복수는 코라이로 표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쿠로스상과 코레 상의 생성과 발전은 동시에 그리스 조각 미술의 창조와 발전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이 조각상들의 초기의 형태는 왼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밀어 디디고 양팔을 허리에 얹고 서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남성 입상 조각(서 있는 남성 형태의 조각상)은 쿠로스의 형태를 기본으로 발전했다. 그리스인들은 남성 나체를 진지한 태도로 관찰하여 아름답고 완벽한 청년의 이상성을 추구하며 그것을 조각하기에 이르렀다. 수니온에서 출토된 쿠로스 상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조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쿠로스 상답게 귀와 긴 머리의 표현은 딱딱하며 직선적이고 도식화되어있다. 복부와 등에는 중앙에 깊이 판 직선으로 복근을 표현하였다. 해당 쿠로스 상에는 기원이라고 추측되고 있는 이집트 조각상과는 분명히 다른 형태의 생동감이 표현되어 있다. 그 후 1세기 동안(기원전 5세기 무렵)에 그리스의 청년상은 기존의 조각관을 유지하되 점차 자연스러움과 활달함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변화해 간다. 아리스토디코스의 무덤에서 출토된 쿠로스 상, 클리티오스의 소년상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초기의 쿠로스상이 걸치고 있던 아르카이크의 미소는 사라졌으며 육체의 체중은 한쪽 다리에 실려 있다. 무게 중심이 변화하며 직선적이었던 허리는 S자형으로 휘어지고, 좌우가 똑같이 묘사되던 반전 법칙은 타파되어 육체의 아름다움을 탐미하게 시작하였다.
쿠로스 상이 남성 나신을 표현하는 조각상이었다면 코레상은 아름답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다. 건전한 육체의 유기적임을 의도 된 비대칭과 자연스러운 신체 표현으로 묘사한 쿠로스 상에 비하여 코레 상에서는 의상의 질감과 중력을 따라 주름에서 보이는 선과 석재 위에 덧입힌 색상의 아름다움 등이 강조되어 있다. 구조적임과 유기적인 미감을 추구하던 쿠로스 상과는 달리 장식적이고 화려한 코레 상은 이오니아 양식의 우아한 추구미를 보여 준다.

아프로디테 조각상
여신 아프로디테는 헬레니즘 시대에 다양한 조각을 발전시킨 조각가들의 위대한 뮤즈가 되어줌으로써 미술사상을 통틀어서도 드물게 비약적이고 위대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아름다움과 사랑을 관장하는 여신을 대표하듯 아프로디테는 모든 형태의 관능적임을 아우르는 모습이 보인다. 웅크린 아프로디테상이나 크니도스 섬의 아프로디테(로마 시대 모각품) 등 자유분방하고 기존과 다른 파격적인 자태를 전개해 나갔다. 헬레니즘 시대의 여신은 이미 시대 풍조에 따라 천상의 존재나 닿을 수 없는 먼 존재가 아니라 육체의 관능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 시대 조각가들의 관능미에 대한 추구는 마침내 남녀 양성을 표현한 헤르마프로디토스 상을 조각하기까지 이르렀다. 상반신은 풍만하고 곡선적인 유방을, 하반신에는 남성의 상징을 조각하여 각각의 성이 지닌 미를 표현한 상이 바로 그것이다. 쿠로스 상이 지닌 육체 탐미와 아프로디테 상에 이르러 양성을 지닌 헤르마프로디토스 상까지 헬레니즘의 조각은 인간이 지닌 아름다움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며 감상하고 후대에 남겼다. 이러한 사회 풍조는 다시금 고전적 이상으로 회귀하려는 작품 또한 부르기 마련이기에 밀로의 아프로디테나 메디치의 아프로디테 등의 고전적인 형태를 추구한 여신상 또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