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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사 (11) 폼페이가 품은 로마 시대의 회화와 공예

by AllJung 2024. 10. 23.

 

로마 회화
헬레니즘 회화는 로마 회화에 많은 부분 수용되어 있다. 조각품과 마찬가지로 헬레니즘 시대 회화 원작품은 당시 사조가 부흥했던 지역들에서 출토되지 않았다. 현대에 이르러 헬레니즘 시대에서 기원한 로마 시대의 회화를 알아낼 수 있었던 기연은 기원후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산의 분화 때문에 갑작스레 화산재에 매몰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해 낸 벽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회화 역시 건축이나 조각의 대이동 기와 맞물린 기원전 1세기쯤에 많은 수의 그리스인 화가가 부유한 로마인 고객을 맞이해 그들의 저택과 별장을 꾸미며 부흥하기 시작했다. 프레스코와 모자이크를 주된 기법으로 삼는 그들의 화풍은 감각적이고 신비하며 산문적인 주제를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상으로 반영하되 로마 회화 특유의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냈다.

필록세노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 화가였는데, 그의 걸작 이소스 전투(Battle of Issus)를 모자이크로 제작한 작품은 로마 회화 고전 말기의 양식을 전하는 귀중한 걸작이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디오니소스 종교화나 아기 텔레포스를 발견한 헤라클레스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에 에트루리아적인 취향을 가미하여 탄생한 새로운 양식이었다. 디오니소스 종교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성행하던 밀교로써 벽화에 묘사된 화려하고 붉은색의 배경에 술의 신을 섬기는 신앙생활의 신비적인 경향이 드러난다. 또한 아기 텔레포스를 발견한 헤라클레스 벽화에서는 거대한 여신의 발밑에서 어린 텔레포스가 사슴의 젖을 마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텔레포스의 아버지인 영웅 헤라클레스의 강인한 형상이 함께 묘사되어 인간의 감정까지 회화적으로 혼재되어 묘사해 냈다. 또한 로마 회화 시대에는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 시기에는 탄생하기 힘들었던 풍경화·정물화라 불리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헬레니즘 회화를 뿌리로 삼아 성장한 로마 시대의 회화는 건축 공간을 채우는 양식으로 새롭게 발전해 나갔다. 양식의 발전 양상은 크게 제1 양식, 제2 양식, 제3 양식, 제4 양식으로 분류되어 있다. 양식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제1 양식

헬레니즘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80년경까지 쓰인 양식이다. 본디 회벽이던 벽면에 대리석 느낌을 주는 벽화를 그려 넣었다. 서로 다른 대리석 판처럼 채색되어 있는 기법이 특징이 된다.
제2 양식

제1 양식을 심화하여 눈속임 기법으로 그려졌다. 튀어나와 있는 이오니아 혹은 코린트식의 기둥을 그려 넣어 기둥 사이에 그려진 공간이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느낌을 주었다. 이를 통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방이 연달아 배치된 듯한 환영을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제3 양식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기에 널리 사용된 양식이다. 기둥을 좌우에 배치하여 액자식으로 구성한 뒤 그사이로는 중앙 정원이나 원경으로 보이는 건물을 그리는 등의 복잡한 원근법을 사용하며 세부적인 장식을 보다 화려하게 그려 넣었다. 또한 세부적인 모티브로 사발, 구슬 장신구, 당초무늬 등 이집트에서 유행하던 장식물을 많이 그려냈다. 이집트에서 수입된 미술 양식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 로마인 사이에서 유행하여 모자이크로 제작한 정물화나 풍경화에도 자주 사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제4 양식

1, 2, 3 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제2 양식에서 환영으로 표현하던 무한성과 제3 양식이 묘사하던 우아함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벽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복도와 방 전면에 벽지처럼 가득 그려져 있다는 특징도 보인다.

로마 공예
공예 또한 여태까지 소개한 건축, 조각, 회화처럼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과 기법을 답습하며 차츰 로마인의 소질을 녹여가며 성격을 바꾼 사례에 속한다. 그중 가장 양식이 많이 변화한 장르는 도자기 제작 기술이다. 독특하게도 에트루리아 시대로부터 이어진 헬레니즘 시대의 도자기는 형태와 장식이 퇴보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 흐름이 로마 시대를 지나며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퇴하여 예술성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게 된 것에서 기원하였다 추측하고 있다. 당시에는 도자기보다 비싸고 제작하기 힘든 유리그릇이나 은그릇이 상층 계급 사람들에게 선호된 탓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비되어 도자기는 대중에게도 제작자에게도 외면받으며 수요가 점차 줄어들어 제작 기술 또한 퇴보하였겠다고 생각된다.

로마 시대의 도자기로서 유명한 것은 아레초 도자기(Arezzo Ceramics)로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3세기에 걸쳐서 짧은 시간 유행하였다. 이 도자기는 적갈색의 유약을 발라 구운 도자기로써 신화 속 영웅담 등을 틀에 눌러서 만든 부조로 새겨넣었다. 도자기에 비해 유리그릇과 카메오 제작 기법은 로마 시대의 공예 중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이며 성장했다. 헬레니즘 시대에 시리아에서 발명된 유리 제조법을 이어받아 발전한 유리그릇 제작 기법은 작은 잔과 유리병 등 실생활에 사용되는 용기 제작에 특화된 발전 양상을 보인다. 출토된 작품 중에는 이집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줄무늬 모양 유리병, 판유리, 모자이크 등의 제품도 찾아볼 수 있다.

조각 장식 기술에 능했던 로마인은 예술적인 가치가 뛰어난 카메오를 많이 제작했다. 카메오는 대리석과 줄무늬 진 마노(석영과 비슷한 광물) 등에 인물 및 사물의 형태를 돋을새김하여 조각한 장식품이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생트샤펠의 카메오, 겜마 아우구스투스의 카메오가 특히나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또한 포틀랜드 꽃병(Portland Vase)은 이 시대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카메오 유리 제작 기술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제작된 공예품들은 대개로 귀족 사이에서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금 공예품은 폼페이에 가까운 보스코레알레에서 발견된 한 무더기의 은그릇, 청동기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발굴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동은 풍부한 재료를 기반으로 다루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 주조가 쉬웠기 때문에 침대, 탁상, 초를 꽂아놓는 촉대 등으로 일상용품이 공예물로 다량 제작되었다. 또한 그 쓰임새가 실용적인 활용 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려한 곡선이나 창작된 동식물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 용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당시 로마인이 화려한 장식물 등으로 호사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며 이를 통해 그 시대의 유행과 생활양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예품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과한 장식성은 중세 미술로 넘어가며 그 양식이 한층 더 복잡하게 발전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