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시대와 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성행하던 공예와 도자, 회화 등을 아울러 로마 미술이라고 부른다.
로마의 미술은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미술과 북부의 에트루리아 미술과 미술에 영향을 받아 한결 나아가고 발전한 양식이다. 로마는 그리스적 형식의 안에서 현실적이고 행동적인 요소를 에트루리아의 미술로부터 받아 계승하였다. 로마 미술의 정신은 에트루리아에서 기원하고 있으나 사실주의의 형태 자체는 그리스의 신전 건축과 조각 및 회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 시초는 에트루리아의 영향력에서부터 시작되어 로마 공화정 말기 이후 그리스의 헬레니즘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그 영향력이 넓어서 이윽고 로마 세계를 호령하는 그레코로만 시대를 불러왔다.
그리스는 기원전 2세기 후반쯤 로마에 정복되었다. 이 시기에 무척 많은 양의 그리스 조각품이 로마로 운반되었다. 또한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가 로마에 초청되어 그리스에서 낳은 명작을 모작하였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대리석에 다시 새겨 넣었으며, 이 과정 중에 로마인의 취향이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인 경향이 반영되어 그 모습에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회화 역시 이와 같은 경향을 따랐기에 폼페이에서 출토된 벽화에서도 그리스 헬레니즘 회화를 모방하고 비속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 개성적인 초상 조각이 발달한다. 방대한 크기의 공공 건축이 실용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건조된 것도 그리스 헬레니즘 정신과 에트루리아 예술 정신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로마 미술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개별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발전하였는데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으로 국가가 커지며 지리적인 이점을 보기 시작함에 따라 예술품의 크기가 커지고 주제 또한 다양해졌으며, 예술품이 각각 사실성을 보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로마 건축
로마 미술은 건축에서 그 특징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기둥과 들보가 특징이 되는 그리스 건축의 구성과 에트루리아의 성문 및 분묘에 사용되었던 아치형을 채용함으로써 로마 시대만의 독자적이고 기념비적인 건축 양식을 창조했다. 오더(Order)의 양식 또한 그리스의 대표적인 세 양식(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외에 이오니아식 주두와 콘크트식 주두를 합쳐 만들어 낸 콤포짓(composite) 양식과 주초가 있되 기둥 몸통에 홈을 새기지 않은 토스카나 양식이 도리아 양식의 변형형으로 생겨났다. 구조면에 있어서는 아치형이 채용되었기에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일종의 시멘트가 건축 공업에 채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로마 시기의 대표적이고 거대한 건축물로는 판테온, 콜로세움, 목욕탕, 수로 등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콜로세움은 포로 로마노에 근접하여 있으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기원후 72년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어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80년에 완공한 타원형의 거대한 투기장으로서 긴 지름이 188m, 작은 지름이 156m에 육박하며 건물 높이는 총 48.5m로 4층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로마의 건축물은 그리스 건축처럼 외적인 미를 추구하지 않고 내부 공간을 충실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전 설명처럼 로마인은 실용적임을 중시했기에 건물 내에서 거주하기 쉽게 설계함하였으며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하여 벽돌로 지은 아치형 구조물을 자주 사용했다. 아치형에서는 원둘레의 각 부분에 상부의 중력이 균일하게 가해지기 때문에 세워야 하는 기둥 수를 줄이고 그 자리만큼 내부를 넓게 사용할 수 있는 건축 공법이다.
판테온은 거대한 크기의 원형 건축물(dome architecture)이며 로마 건축 사상 불후의 명작이라 불린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기원후 125년경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두 번째 판테온은 지름과 천장이 43m에 육박하며 벽의 두께는 6m나 된다. 또한 천장의 가운데에는 지름 9m 정도 되는 원형의 구멍이 나 있다. 내부에는 코린트식의 기둥이 세워진 일곱 개의 감실과 대청 북쪽 입구에 코린트식의 기둥 8개를 나란히 세워 건조한 둥근 현관 회랑이 있다. 지극히 간소한 그 외관은 충실하게 지어진 내부의 아름다운 구조물과는 대조적이다.
로마 건축의 중심적인 건축 이념은 실용성 및 주제의 다양성이다. 신전, 바실리카, 극장, 개선문, 별장 등이 이 이념에 따라 역대의 황제들에 의하여 세워졌다. 예시로 든 각 건축물의 대표적인 예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바실리카(공터에 세워진 다목적 건축물)와 개선문, 카라칼라 황제의 욕장(공중목욕탕),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티볼리 빌라 아드리아나(별장), 트라야누스 황제의 전승기념주(기둥), 퐁두가르드(수교 다리) 등이 알려져 있다.
로마 조각
로마 조각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으며 출발했다. 초기에는 그리스에서 전승된 양식을 로마인 특유의 현실적인 감각과 조형 목적 속에 녹여내며 점차 독자적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미술사에서 그레코로만 시대라고 불리는 기원전 1세기 무렵은 로마인이 이탈리아 본토를 지나 지중해, 마침내 세계 전역에 영향력을 미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특히 로마 문화에 그리스 문화가 크게 섞이며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의 미술의 영향이 로마의 조각에 미친 영향력은 무척 깊고 유기적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의 정복 이후 기원전 2세기 후반 로마로 운반됨과 동시에 파시텔레스를 비롯한 다수의 그리스의 예술가가 불려 가 그리스 고전의 명작을 로마식으로 모방하였기 때문이다.
전란의 시대를 정리하고 평화를 추구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재위 전 27년∼후 14년) 시대의 조각은 방탕하고 극단적인 표현을 주된 예술사조로 삼았던 헬레니즘 예술을 반성하듯 고전적이고 정갈한 양식으로 복귀하려는 현상이 드러난다. 프라마 포즈타의 아우구스투스 상, 아라 파키스(아우구스투스 평화의 제단)에 새겨진 부조(평면 재료 위에 높낮이를 만들어 입체적으로 표현함),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된 아우구스투스 상 등은 그리스의 고전기의 단정한 양식과 로마 미술사에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성을 교묘하게 섞어 만들어낸 걸작으로 손꼽힌다.
로마의 웅변가(루브르 미술관)상은 아테네에서 로마로 이주한 클레오메네스가 만든 것이라 전해지는데 이는 초기 로마 미술을 대표하는 초상 조각으로서 알려져 있다. 로마에서 특히 발달 된 초상 조각품에는 로마 조각만의 독특한 독창성이 드러난다. 단순하게 이목구비 등 외형을 모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물이 지닌 성격까지 상에 담아내는 부분이 바로 그러하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9년 11월 17일 ~ 79년 6월 23일), 티투스 황제(39년 12월 30일 - 81년 9월 13일), 카라칼라 황제(186년 4월 4일 - 217년 4월 8일) 등 역대 로마 황제의 초상에서는 거칠고 단단한 외형 아래에 자리 잡은 정복자적인 면모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로마인은 개인의 명예나 공적을 중히 여겼기에 기념문이나 기념탑을 세움으로써 이를 기념하였다. 건축물을 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어진 건조물들은 다양한 형식의 부조로 꾸몄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념문이나 트라야누스 기념 주(기념탑)의 이러한 기념 건축물의 대표인 예시이다. 트라야누스의 기념주는 높은기둥 형식의 건조물이다. 높이 27m이며 기둥 몸통 전면에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 정복을 부조로 조각하였다. 로마 시대의 부조는 그리스와는 달리 회화성을 강조하여 명암을 대비시킴으로써 보다 격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후기의 부조에는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루도비시 대석관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조는 로마의 조각 기술이 그리스의 전통을 떠나 중세적 표현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경향은 부조뿐만 아니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305년) 이후의 조각 사조에도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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