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리아 미술
에트루리아 미술(기원전 9세~2세기)은 북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인이 만든 미술이다.
에트루리아의 건축
에트루리아 건축은 석재를 사용한 퇴석식의 아치 제작과 볼트 공법의 사용으로 서양 건축사에 기록되었다.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본디 동방에서 사용되었던 건축 구조가 이탈리아에 스며들며 분묘 건축에 사용되었다. 에트루리아의 오랜 유적인 분묘를 대표하는 구조는 기원전 7세기 중반에 지어진 무덤 내 궁륭 천장, 캄파나의 무덤 입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에트루리아는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싼 낮은 언덕 위에 도시를 세웠다. 또한 이전에 기록한 그리스와 같이 신전이 대표적인 도시 건축물이다. 다만 에트루리아의 신전은 목재가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대부분 유실되어 주춧돌과 벽면을 이루던 생 벽돌의 파편이 유적에 남아 현재에는 그 잔재를 통해 형태를 유추해야만 한다. 신전은 그리스의 신전과 유사하게 설계되었다. 정면에는 주랑 현관(프로나오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벽돌로 둘러싼 본전(케라)은 한 개에서 세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기둥이나 들보에는 목재가 사용되었으며 박공지붕의 용마루 및 상부의 세세한 부분에는 채색된 테라코타로 꾸며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발굴된 피렌체 교외(郊外)의 피에소레의 신전(기원전 3세기 추정)은 세로가 약 17m, 가로는 13m 정도 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로 주랑현관이 넓다. 케라는 한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뒤의 벽면이 별당 벽면에 딸려 있다.
일반적으로 에트루리아 신전 건축의 다음과 같이 세 시기의 발전 시기로 분류된다. 제1기(기원전 6세기 중반~6세기 말)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미네르바 신전이다. 제2기(기원전 6세기말~기원전 5세기 중반)의 경우 신전의 장식이 화려함이 극에 달한 시기로 분류된다. 제3기(기원전 4세기의 중반~기원전 2세기) 이 당시 신전 구조는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에트루리아 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앞서 언급한 분묘를 들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른 형식을 보이며 우물형, 직사각형, 정사각형, 원형 등 다양하다. 가장 오래된 분묘의 예시는 빌라노바 문화와 섞인 시대(기원전 10세기~기원전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물형으로 지어진 분묘는 중앙에 유골함을 방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그 후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새로이 직사각형 분묘가 만들어졌으며, 다시 시간이 흘러 기원전 7세기말 이후에는 궁륭 천장을 가져 에트루리아의 본연의 분묘 건축 형태가 나타났다. 주위를 원형을 둘러싼 무덤의 형식을 띠며 대다수는 지하에 지어져 그 위를 흙으로 덮은 형태이다. 이후 기원전 6세기 무렵에는 하나의 분묘에 다수의 묘실을 설치한 뒤 천장을 중앙의 기둥으로 떠받친 형태도 찾아볼 수 있다.
에트루리아의 조각
기원전 6세기 말 무렵에 에트루리아의 조각만의 독자적인 대조각이 제작되었다. 그 이전의 것은 대공의 분묘에서 발견된 초기의 테라코타 유골함에서 발견되었다. 초기 형태의 유골함은 뚜껑 위에 작은 사람의 모습이나 동물의 상을 본뜬 조각이 보이는데, 이러한 형태는 차츰 발전하여 기원전 7세기경에는 유골함 전체가 인체를 본뜬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화장 풍습이 기원전 6세기 중엽에 끝남과 동시에 분묘에서도 유골함이 차차 모습을 감추었다. 이를 대신하여 관 위에 부처의 반와상을 조각해 넣은 테라코타 관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에는 로마의 빌라지울리아 미술관과 루브르 미술관이 각각 소장하고 있는 부처의 반와상은 체르베트리에서 출토한 테라코타 관이며 이는 에트루리아 조각의 가장 훌륭한 예시로 손꼽힌다. 테라코타 관들의 제작 연대는 보통 기원전 520년경에 분포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대영 박물관이 소장 중인 두 점의 테라코타 여인 좌상이나 피렌체 고고학 박물관의 청동 전사 상과 여인상은 초기 에트루리아 조각의 좋은 예시로 평가받고 있다. 소위 아르카이크 양식(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 중엽까지)이라고 이름 붙여진 시기는 에트루리아 조각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이다. 동시대를 호령하던 그리스 미술 및 조각의 영향을 수용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과 양식을 에트루리아 조각의 독자성을 부여하며 발전시켜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네르바 신전의 지붕에는 아폴론과 헤라클레스의 군상이 꾸며져 있었는데 이는 현재 빌라지울리아의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 한편 코펜하겐 니카루르스베로그 진열관에 전시되어 있는 서 있는 소녀상은 앞서 언급한 관의 조각상들과 더불어 에트루리아 아르카이크 양식기에 제작된 테라코타 조각을 대표하는 대표작이다. 그중에서도 미네르바 신전의 아폴론 조각상은 에트루리아의 예술가 중에서 가장 널리 이름을 알린 조각가 우르카의 작품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위 조각상들이 지닌 훌륭한 기능과 형태는 비단 테라코타 조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료인 청동 조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로마 건국 건설의 일화를 담고 있는 어미 늑대(로마 콘세르바토리)상과 괴수 키마이라는 에트루리아의 정교한 주조(거푸집에 금속을 부어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식) 기술의 극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물론 생동감 넘치고 사실적인 표현력으로 대표되는 기원전 5세기경의 에트루리아 청동 조각의 걸작이다. 이 기간에는 머리에서 하반신으로 가는 선이 뚜렷이 가늘며 긴 봉납 목적의의 소형 청동 조각상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이들 모드 박진감 넘치는 표현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조각상들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가늘고 긴 신체는 지극히 단순하여 사실적으로 묘사된 머리 부분과 무척 대조되어 에트루리아 조각 중에서는 이질적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몇몇 학자들은 이 시기의 작은 청동 조각상은 에트루리아 본연의 기술보다는 오히려 이탈리아 지역의 토착적인 표현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평가한다.
시간이 흘러 기원전 4세기 이후에 제작된 작품들의 대부분은 이전 시기를 대표하는 독창성과 생동감을 잃고 차츰 세를 넓히던 그리스와 로마와 표현 방식은 물론 제작 방법까지 현저하게 비슷해졌다. 움브리아에서 발견된 마르스 상이나 네트에서 출토된 연설자상까지, 모든 조각상이 후기 에트루리아 조각을 대표하고 있으나 저마다 보이는 특징이 헬레니즘 양식에 큰 영향을 받아 이를 계승한 로마 조각의 영향력이 크게 보인다. 에트루리아 조각은 후기에 접어들며 마신과 공상의 동물, 비극적인 주제 등을 다룬 건축 부조와 조각품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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