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리아의 회화
에트루리아의 미술은 굉장히 실용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는 앞서 건축의 형태로 언급한 여러 가지 형태의 분묘와 여기에 매장된 많은 일용품을 제작하던 풍습에서 시작했다. 또한 실용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분묘의 벽면을 아름답게 채색한 벽화로 장식했다. 신전과 공공 구조물 등 많은 건축물에도 에트루리아 특유의 벽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벽화가 남아있는 분묘로는 타르퀴니아의 분묘군, 불치 지역 프랑수아의 묘, 베이오 지역 캄파나의 무덤, 키우시 지역 카즈치의 묘 등이 있다.
그중 타르퀴니아의 분묘 군에는 묘지가 모여있는 지역이니만큼 벽화를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벽화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추정되는 황소의 묘는 기원전 6세기 중엽에 지어졌다. 황소의 묘 정면에는 트로이 전쟁을 묘사한 광경이 그려져 있으며 놀라운 점은 사람만 아니라 나무들이나 꽃 무리가 지극히 자연주의적인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사용한 색채는 장식성이 강한 색상의 빨간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이다.
기원전 6세기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렵과 어로의 묘에는 네모진 벽면에 바다를 배치하고 그 한가운데에서 배를 타고 낚시 중인 네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푸른 하늘에는 영롱한 빛을 머금은 물새가 떼를 지어 자유로이 날고 있으며 바다에는 생동감 있는 돌고래까지 묘사되어 있다.
황소의 묘는 물론 수렵과 어로의 묘 등 에트루리아의 기원전 6세기 벽화에는 악기에 맞추어 춤추는 남녀를 주제로 연회를 묘사한 것이 많으며 인물들은 답답한 구석 없이 밝고 자유로운 생기가 넘친다. 물고기, 바다새, 꽃밭, 나무 등이 인물과 더불어 그려져 에트루리아인과 자연은 뗄 수 없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선사시대의 크레타 회화를 떠올리게 됨과 동시에, 분묘 자체가 먼 것이 아니라 에트루리아인의 일상과 깊게 결합하여 있음을 보여준다. 죽은 뒤에도 사람의 혼은 소멸하지 않으며 이후로도 다시 현세와 같은 생활을 향유한다는 사후세계관을 에트루리아인의 회화에서는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가 되면 사용하는 색채가 부드러워지고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며 구조에 엄격한 화풍이 나타났다. 남작의 묘에 사용된 기법은 템페라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이전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프레스코가 아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나란히 선 수목 사이의 인물은 가지런하고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의 묘사는 극히 사실적이다. 1세기 사이에 일어난 극명한 변화의 원인으로는 그리스 회화를 들 수 있다. 다만 인물의 묘사에 집중하는 그리스의 회화와는 달리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물 묘사는 에트루리아 회화만의 특징이다.
다시 세기가 흘러 기원전 4세기에는 벽화의 주제와 화풍이 급격하게 변화한다. 귀신의 묘에는 투쿨카라고 불린 귀신이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뾰족한 뿔을 드러내는 오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같은 분묘 내에 묘사되어 있는 미인의 근처에도 명계의 안내자인 카르가 그려져 있는 등으로 자연과 인물의 모티브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미지의 불안과 공포를 읽어낼 수 있다. 새롭게 발견된 이러한 경향은 점차 폭력적이고 잔인한 현장을 묘사하는 등으로 발전해간다. 그 유명한 프랑수아의 묘에는 영웅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친우인 파트로크로스를 위해 트로이의 청년을 살해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사후 세계로 혼을 인도해 가는 안내인 반트와 카르가 죽은 이를 이끌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4세기 이후에 공통으로 발견되는 죽음으로의 공포는 공교롭게도 에트루리아가 저물어가던 쇠퇴기와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에트루리아의 공예
에트루리아의 공예는 주변국에 비해 청동 제품과 금 공예품 제작에 뛰어난 장점을 보인다. 에트루리아의 기법은 동방과 그리스에서 그 기술을 배워와 이후로는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냈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기원전 6세기에 걸쳐 타르퀴니아와 체르베트리에서는 청동 제품의 제작이 성행한다. 또한 기원전 6세기 후반의 불치에서는 삼각대와 촉대, 향로 등의 생활용품이 대량으로 제작되었는데 저마다 장식적 인물을 얹거나 제품의 발 부분에 동물의 발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직사각형과 원통형의 화장 상자는 키스타라고 불리는데, 청동 거울과 더불어 여기에 새긴 선각 기법(물건의 표면에 문자나 장식 등을 얇게 파 새기는 금속공예 기법)은 에트루리아 금 공예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섬세하다. 절묘하게 파낸 선은 그 유려함이 다른 고대 국가와 비교해 보아도 비교할 작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제작의 중심지가 팔레스트리나와 불치일 것으로 짐작되는 에트루리아 선각 공예의 주제는 미(美)의 여신과 연관 된 신화와 사랑을 다룬 작품이 많다. 바티칸에 있는 에로스와 케파로스의 손거울과 피코로니의 키스타에 새겨진 선각은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걸작이다. 또한 코르토나에서 출토된 부조(평면 위에 어떤 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기는 기법) 된 램프(기원전 5세기 무렵으로 추정)도 모양과 장식이 사치스럽고 독특하다. 이 작품 또한 에트루리아의 고도로 발전된 청동 기술을 현대에 이르러서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유물이다.
브로치, 목걸이, 귀걸이 등 여성의 금 장신구에 이르러서는 에트루리아만의 독자적인 기능을 관찰할 수 있다. 체르베트리 왕 부부의 묘소에서 출토된 브로치는 그 제작 연도가 기원전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위는 나뭇잎 모양을 방패처럼 두르고 그 둘레로는 두 줄의 팔미트로 꾸몄으며, 중앙에는 생기 넘치게 걸어 나가는 다섯 사자가 있다. 또한 아래에 위치한 계란 모양의 방패에는 오리가 일곱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등 다양한 정물을 묘사하는 섬세한 기술은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에트루리아의 도자기는 대체로 그리스 도자기를 모방하여 제작된 것이나 흑색 도기 부케로는 그 모양도 장식도 독자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스 도자기가 대량으로 흘러 들어오며 에트루리아의 도자기공들은 이에 큰 영향을 받으며 작품의 대부분을 모방하여 제작하였다. 다만 에트루리아 독창적인 도자기 형식인 부케로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시대만의 독특한 도자기로 취급된다. 부케로는 도자기를 만드는 흙을 그을려서 만든 광택이 나는 흑색 도자기이다. 부케로의 원형은 에트루리아 토착 문화인 빌라 노바에서 발전하였다고 추측된다. 기원전 8세기경에 가장 오래된 부케로가 제작되었으며, 키우시는 기원전 6세기~5세기에 부케로를 가장 많이 만들어낸 도시이다. 이때 제작된 부케로는 바탕이 두꺼우며 한층 검은 광택을 내는데 소박하여 튼튼한 일반적인 에트루리아의 도자기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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